
안녕하세요, 여러분! 반(Van) 여행기 두 번째 편이에요 😊
오늘은 반 호수와 악다마르 섬(Akdamar Adası)을 다녀온 이야기예요.
전날 밤 일요일이라 식당도 다 닫혀있고, 호텔도 현금만 받는다고 하고... 반에서의 시작이 좀 험난했잖아요.
오늘은 거기에 더해서 대중교통과의 사투가 펼쳐졌어요 😂
그래도 결국 도착한 그 섬에서 본 풍경과, 그 섬에 얽힌 가슴 아픈 역사 이야기까지 진솔하게 풀어드릴게요.
☁️ 흐리고 쌀쌀한 반의 아침
반의 아침은 참 쌀쌀했어요.
햇살 가득했던 산리우르파, 마르딘, 디야르바크르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어요.
날씨도 흐리고 어딘가 우울한 기운이 감돌았어요.
그래도 일정은 소화해야 하니까, 반 호수와 아크다마르 섬을 다녀오기로 했어요.

🚐 현지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던 돌무쉬 찾기
반은 돌무쉬나 택시로 이동해야 하는데, 대중교통 찾기는 구글 지도가 거의 무용지물이었어요.
이럴 땐 결국 현지인들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침에 호텔 리셉션으로 가서 차 한 잔을 얻어 마시며 악다마르 섬에 가는 방법을 물었어요.
그랬더니 리셉션 아저씨가 직접 돌무쉬 종점까지 데려다주셨어요.
한 15분 정도 걸어갔던 것 같아요. 혼자였으면 절대 찾지 못했을 거예요.
반 시내에서 악다마르 선착장까지는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요.
완전 시 외곽에 있어 돌무쉬도 자주 다니지 않아요.
리셉션 아저씨는 돌무쉬 기사들과 친한지 자기들끼리 한참 수다를 떨더니 저한테 또 차이를 사주셨어요.
이 동네 사람들, 정말 차이를 사랑하는 것 같아요 😊

🔄 갑자기 내리라는 돌무쉬 — 멘붕의 순간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출발 시간에 맞춰 돌무쉬에 올라탔어요.
그런데 한참 가던 돌무쉬가 시 외곽으로 빠지기 전, 갑자기 멈춰 서더니 내리라는 거예요.
말이 하나도 안 통하는데 뉘앙스가 여기서 다른 돌무쉬로 갈아타야 한다네요.
순간 멘붕이 왔어요.
일단 내렸어요. 다행히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좀 있었어요.
그분들에게 "악다마르 피어(Akdamar Pier)?"
즉 악다마르 섬 선착장이라는 단어만 말했더니, 알아서 어느 차를 타라고 알려주셨어요.
돌무쉬 기사님께 "네 카다르(Ne kadar)?" 라고 요금을 물으며 지폐를 내미니까 알아서 정확하게 잔돈을 거슬러 주셨어요.
그렇게 돌무쉬를 타고 40분쯤 가니 내리라고 알려줬어요.
저 말고도 악다마르 섬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르르 내리길래 눈치껏 따라갔더니 정말 선착장이 나왔어요.
.
💡 반에서 대중교통 이용 팁
- 구글 지도 신뢰하지 마세요. 현지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빠릅니다.
- 핵심 단어 "악다마르 피어(Akdamar Pier)" 만 알면 충분해요.
- "네 카다르(얼마예요)?" 는 꼭 외워두세요.
- 환승이 감안해서 시간 여유를 넉넉히 잡으세요.

배는 사람이 다 차야 출발해요
선착장에서 180리라를 내고 기다렸어요.
배 시간표가 있긴 한데 크게 의미가 없어요.
배가 다 차야 출발하는 시스템이거든요.
다행히 단체 수학여행 온 남학생들이 있어서 배는 금방 꽉 찼어요.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출발할 수 있었어요!

💔 악다마르 섬 —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의 전설
악다마르 섬은 슬프고 비극적인 전설에서 이름을 따온 곳이에요.
옛날, 악다마르 섬에는 아름다운 아르메니아 공주 타마르가 살고 있었어요.
그녀는 호숫가 마을의 한 청년과 사랑에 빠졌지만, 신분 차이로 인해 두 사람의 사랑은 허락받을 수 없었죠.
그래서 타마르는 매일 밤 섬에서 등불을 밝혀 연인에게 신호를 보냈고, 청년은 그 불빛만을 의지해 차가운 반 호수를 헤엄쳐 건너와 그녀를 만났어요.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타마르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만남을 막기 위해 폭풍우 치는 밤에 등불을 꺼버렸어요.
방향을 잃고 거친 호수 위를 헤매던 청년은 결국 힘이 다해 물속으로 가라앉으며 마지막으로 "아, 타마르!"라고 외쳤대요.
전설에 따르면, 이 청년의 마지막 절규가 세월이 흐르며 '아흐타마르(Akhtamar)', 오늘날의 '악다마르(Akdamar)'라는 지명이 되었다고 하네요.

⛪ 10세기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섬에는 악다마르 교회가 있어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소속 건축물로, 10세기(915~921년)에 바스푸라칸의 가기크 1세 왕에 의해 지어졌어요.
중세 아르메니아 건축 양식의 중요한 사례로 꼽히는 곳이에요.
그러다 이곳이 오스만 제국에 편입 되면서 교회는 폐쇄되어 버렸어요
20세기 초에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때 이 교회는 완전 아작이 나버렸답니다.
저 건물은 2000년도 초반에 튀르키예 정부에서 다시 복원한 거에요.
2013년에는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미사도 허용해 주었지만 현재 이슬람 강경파 에르도안이 집권한 후로는 그마저도 금지 되었대요.
지금은 그저 관광객들에게 입장료 바가지나 씌우는 관광지일 뿐이죠.

🏔️ 섬 자체보다 더 멋진 풍경
솔직히 말씀드리면 섬 자체에는 큰 볼거리가 없어요.
하지만 섬에서 바라보는 만년설 뒤덮인 아르토스 산 경관이 정말 멋졌어요.
반 호수의 푸른 물빛과 흰 눈으로 덮인 산이 어우러지는 그 풍경이 오늘 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었어요.
섬에 내리자마자 입장료를 내고 매점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어요.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섬을 돌아보는데, 혼자 온 동양인 여자분이 말을 걸어왔어요.
한국 사람인가 했는데 한국에서 오래 산 중국인이었어요. 혼자 장기 여행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헤어졌어요.
혼자 여행하다 보면 이런 짧은 인연들이 생기는 게 또 묘미예요.
낯선 사람과 계속 이야기하는 것도 부담스러우니, 적당한 선에서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 반과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아픈 역사
이 섬과 교회를 둘러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던 이유가 있어요.
반은 예전에 아르메니아인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었어요.
그런데 1차 세계대전 중, 오스만 제국이 아르메니아인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10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깊이 연관된 곳이에요.
1915년 4월 20일, 오스만군과 비정규 쿠르드 부대가 반 시의 아르메니아인 거주 구역을 공격했어요.
아르메니아인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무장 저항을 시작했어요.
약 한 달간의 전투 끝에, 5월 중순 러시아군이 반에 진입하면서 오스만군은 철수했어요.
이후 오스만 제국은 쿠르드족 민병대를 조직해 아르메니아인들을 몰아냈고, 그렇게 떠난 사람만 해도 10만 명이 넘는다고 해요.

⛴️ 나갈 때는 다른 선착장에 도착
나갈 때는 따로 배 티켓을 살 필요 없이 정박해 있는 배를 타면 돼요.
들어올 때 산 티켓이 왕복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탄 배는 처음 탔던 선착장과 다른 곳에 내려줬어요.
악다마르 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이 여러 군데 있는 것 같았어요.

⏱️ 비효율적이었던 동선, 다음엔 택시 투어로
다시 길을 건너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돌무쉬를 갈아타고 반 시내로 돌아왔어요.
나중에 돌이켜보니 이동에 시간이 너무 걸렸어요.
호텔 프론트에 가보니 반 시내 주요 관광지를 돌아보는 택시 투어가 있더라고요. 가격은 1000리라.
'아, 차라리 이걸 할걸.'
택시 투어를 이용했으면 돌무쉬 환승 스트레스 없이 더 많은 곳을 효율적으로 둘러볼 수 있었을 거에요.
반은 관광도시가 아니다 보니, 이렇게 하루 정도 돌아보고 여유가 있으면 다음 날 도우베야짓(Doğubayazıt)으로 넘어가는 게 효율적인 일정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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