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대도시에서의 마지막 아침
여행 40일차, 부다페스트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아침은 유난히 느리게 흘렀습니다.
몸이 피곤해서인지 자꾸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전날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온 듯했습니다.
‘문명의 세계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도시는 오래 머물렀던 여행의 정점을 찍는 곳이었습니다.
한참을 늘어져 있다가 12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몸을 일으켜 루다스 온천(Rudas Bath)으로 향했습니다.
헝가리는 로마 시대부터 온천 문화가 발달한 나라로, 부다페스트만 해도 세체니, 겔레르트, 루다스 등 다양한 온천이 있습니다.
그중 루다스는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전통 온천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2. 루다스 온천, 현지인들의 일상 속으로
온천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꽤 붐볐습니다.
안내판에는 입장료가 6,400포린트라 되어 있었는데, 주말에는 ‘올인원 요금제’만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실제로는 12,200포린트(약 45,000원)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세체니나 겔레르트를 갈걸…’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이미 들어왔으니 후회는 잠시 미뤘습니다.
루다스는 규모가 아주 크진 않았지만, 사우나와 탕이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고, 돔 형태의 천장 아래 전통적인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참고로 여기는 어덜트 온리 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온천이죠.
특이하게도 탈의실이 남녀 공용이라는 점이 조금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용 캐빈이 있어서 프라이버시는 충분히 보장되었습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자, 지난 40일간 쌓인 피로가 서서히 풀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온천 안에는 현지인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있었습니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중년의 부부들, 조용히 책을 읽는 노신사까지.
여행 중 만나는 그들의 ‘일상’은 여행자에게 또 다른 풍경이 되어 마음에 남습니다.
3. 오후, 부다페스트의 일상으로 돌아와
온천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3시. 간단하게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한인마트에 들러 필요한 식품을 사고, 혹시 모를 일정에 대비해 환전도 조금 했습니다.
이제 소도시로 넘어가면 한국 식품을 언제 구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부다페스트는 도심 곳곳에 환전소가 많아 비교적 편리합니다.
저는 50유로만 환전해두었는데, 이후 헝가리 내 소도시를 여행할 때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훌쩍 지나 5시가 넘자마자, 오늘의 또 다른 목적지인 헝가리 국립오페라하우스(Hungarian State Opera House)로 향했습니다.

4. 헝가리 국립오페라하우스, 발레 ‘코펠리아’ 관람
부다페스트의 오페라하우스는 외관부터 예술 그 자체였습니다.
화려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벽면의 조각과 샹들리에가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오늘의 공연은 발레 <코펠리아>.
위 사이트에서 사전 예약을 했어요. 1층 제일 뒷자리가 10만원 정도 였어요.
프라하에서 못 본 발레 공연 결국 부다페스트에서 보게 되었어요.

좌석은 뒷자리였지만, 극장이 크지 않아 무대가 잘 보였습니다.
코펠리아는 익살스러우면서도 섬세한 움직임이 많은 작품으로, 음악과 춤이 어우러진 밝은 분위기의 발레였습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괴짜 과학자 코펠리우스 박사는 아내가 병사하자 살의에 빠져있다 아내와 닮은 인형인 코펠리아를 만들어 발코니에 앉혀놓은 것으로 위안을 삼았어요.
그런데 인형을 너무 잘 만든게 화근. 마을 청년들이 코펠리아에게 반해서 구애를 하고 난리가 났어요.
마을 청년 중 하나인 프란츠는 약혼녀 스와힐다도 팽개치고 코펠리아에게 구애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죠.
스와힐다가 당연히 빡치겠죠. 결국 밤에 코펠리우스 박사의 집에 몰래 잠입을 합니다.
거기서 코펠리아가 인형인걸 알게 되고 스와힐다는 코펠리아 행세를 하면서 약혼자를 골탕먹여요.
나중에 프란츠와 코펠리아는 결국 결혼식을 올리고..
불쌍한 코펠리우스 박사만 이리저리 내팽개쳐진 코펠리아 인형을 끌어안고 슬퍼한다는 내용이에요.
중간에 조금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공연이었습니다.
주연은 프란스와 스와힐다지만 코펠리아도 좀 비중이 있는데요. 코펠리아 역 무용수는 한국인 발레리나였습니다.
좀 뿌듯하네요.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예정 시간은 9시 30분까지였지만 실제로는 8시 30분쯤 막을 내렸습니다.
예상보다 일찍 끝난 덕분에 마지막으로 한 곳을 더 들를 수 있었습니다.

5. 회쇠크 광장과 부다페스트의 밤
공연이 끝난 뒤, 버스를 타고 회쇠크 광장(Hősök tere, 영웅광장)으로 향했습니다.
부다페스트의 대표적인 광장이자, 헝가리 건국 천년을 기념하는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공사 중이었습니다.
그래도 잠시 서서 불빛이 반짝이는 광장을 보니니, 부다페스트에서 보낸 시간들이 한 장의 엽서처럼 스쳐갔습니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창밖으로 보이는 도나우 강의 불빛은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6. 부다페스트 여행 팁
- 루다스 온천 : 주말은 요금이 인상됨(올인원 12,200포린트). 현지인 비율이 높고 조용한 분위기.
- 세체니·겔레르트 온천 : 관광객 위주, 시설 크고 사진 명소로 인기.
- 국립오페라하우스 : 온라인 예매 필수, 좌석 크기 작아 뒷자리도 시야 양호.
- 회쇠크 광장 : 공사 여부 사전 확인 필요. 야경보다는 낮 방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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